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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가 애플 CEO(최고경영자로)로 복귀한 해인 2000년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좋은 제품을 만들려 애쓰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편히 잠자리에 들 수 있다"고 말했었다.
그는 아이맥을 비롯해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 혁신적인 제품으로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고 편히 잠이 든 셈이다.
일각에서는 스티브잡스의 업적이 세계 IT 환경을 10년 정도 앞당기는데 기여한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가 한국에 미친 영향력도 대단하다. 한국 산업지도를 통채로 바꿔 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혁명의 시작은 2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이전까지 한국에서 애플의 모습은 매니아들의 전유물 정도에 불과했다. 매킨토시는 주로 디자이너들이 쓰는 컴퓨터 정도로 인식됐고, 2001년 해외에서 선풍적 인기를 끈 아이팟도 국내에선 크게 힘을 쓰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폰3GS는 달랐다. 2009년 11월 28일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아이폰 개통식이 열렸다.
오후 2시에 열리는 행사를 위해 아침부터 100여명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한국에서는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가로 6.2cm, 세로 11.5cm, 무게 135g의 휴대폰이 이렇게 큰 쓰나미를 몰고 올 것으로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얼리어답터들의 장난감 정도로 여겨졌다.
그런데 일주일 동안 실시한 예약 판매에서 7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대성황이었다.
아이폰을 사용한 사람들 사이에선 '혁신'이라는 단어가 나오기 시작했고, 이후부터 파죽지세로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당시 최고 인기를 누리던 연아폰과 매직홀폰 등을 제치기에 이르렀다.
아이폰의 열풍 배경에는 혁신적인 인터페이스가 있었다. 미끄러지는 듯한 손동작만으로 조작케 하는 정전식 멀티터치 방식은 새로운 가치를 제공했다. 소비자들은 마우스가 처음 나왔을때와 같은 만족감이 사로잡혔다.
또한 아이폰은 무선 인터넷 개방을 불러왔다. 그동안 무선랜(와이파이)을 탑재해 개방된 인터넷을 무료로 쓸 수 있는 단말기에 적대적이었던 이동통신사들도 아이폰을 계기로 시대의 변화에 편승해야 했다.
아이폰 열풍의 중심에는 애플리케이션을 사고 팔수 있는 애플 앱스토어가 있었다. 앱스토어는 이통사가 주도하는 폐쇄적인 구조가 아닌 소비자와 개발자가 개방된 공간에서 사고 파는 장터였다. 이는 소비자들에게는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했고, 개발자에게는 제2의 소프트웨어 창업의 바탕이 됐다.
대표 모바일 메신저로 부상한 '카카오톡'이 대표적이다. 그동안 모바일 시장은 이통사 중심의 폐쇄적 시장이었지만, 앱스토어를 계기로 벤처기업이 독자적인 서비스를 하는 것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제범 카카오 대표는 당시 "애플 앱스토어를 통해 수많은 IT 벤처인들이 새로운 기회에 도전하고 성공스토리를 만들어낼 것"이라며 "이를 통해 한국의 IT 벤처 생태계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들 역시 앞다퉈 고객상담과 마케팅의 창구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아이폰 도입은 국내 통신사의 경쟁구도에 불을 붙였다. 아이폰을 처음으로 도입한 KT는 '스마트폰= KT'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며 빠르게 성장했고, SK텔레콤과의 격차를 좁히는 계기가 됐다.
통신3사는 과거 이통사 중심의 폐쇄적 정책에서 180도 전환해 개발자 중심의 혁신적인 에코시스템 구축과, 무선 데이터 시장 확대를 이끌기 위한 지원대책을 잇따라 내놓기도 했다.
휴대폰 제조사인 삼성전자와 애플의 전쟁도 막이 올랐다. 국내시장에서 그동안 독보적인 1위였던 삼성전자는 애플의 돌풍에 적잖게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옴니아2로 맞섰지만 역부족이었다.
급기야 아몰레드폰보다 성능이 뛰어난 옴니아2의 출고가격이 낮아지는 현상도 나타났다. 아이폰에 대응하기 위해 가격 체계를 무너뜨리는 제 살 깎아먹기식 전략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실제 55%를 훌쩍 넘던 삼성전자의 월간 휴대폰 점유율은 아이폰 출시 이후 2010년 말 43%까지 떨어졌다. 더욱이 삼성과 함께 양강구도를 형성해 온 LG전자는 4년만에 10%대로 떨어지는 부진이 이어졌다.
정치권도 아이폰 열풍을 비켜가지 못했다.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이 된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는데 트위터를 이용한 홍보효과를 크게 봤다고 알려지면서 지난해 6·2지방선거 후보자들 역시 자신의 트위터를 개설해 홍보에 활용하려는 분위기가 확산되기도 했다.
이날 스티브잡스 사망 소식을 접한 정치인들과 유명인사들은 트위터를 통해 애도를 표하는 이도 적지 않다.
나경원 서울시장 한나라당 후보는 자신의 트위터에 잡스가 지난 2005년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 한 축사 '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전진하면서(Stay Hungry, Stay Foolish)'를 인용해 "그가 젊은 세대들에게 보여준 도전정신과 열정은 큰 귀감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소설가 이외수씨도 트위터를 통해 "그대는 갔어도 제 책상 위에 맺은 인연은 남아 있습니다. 명복을 빕니다"라고 적었고,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도 "스티브 잡스 별세. 'Stay Hungry, Stay Foolish'를 생각하며 그를 추모한다"라고 애도를 표했다.
잡스는 에디슨이나 그레이엄 벨에 비견될 만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로저 케이 엔드포인트 테크놀러지 소장은 "애플의 부활은 적어도 10년, 길게 보면 반세기 만에 처음 있을만한 놀라운 사건"이라면서 "전체적인 영향으로 본다면 스티브 잡스는 토머스 에디슨이나 그레이엄 벨에 비견될 만하다"고 평가했다.
미국 증권전문 사이트인 마켓워치는 스티브잡스의 업적을 감안해 10년래 최고의 CEO로 스티브 잡스를 선정하기도 했다.
kangs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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